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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는 우정과 사랑에 관한 서정시이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시 속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의 인간성을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소네트는 때로 인습적이고 과장된 언어로 표현되고 있어도, 작자에 관해서 무엇인가 이야기한다. 소네트는 인간 셰익스피어를 확실히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책소개
영문학자이며 공연예술평론가인 이태주 교수가 번역한, 셰익스피어의 영원한 고전 『소네트』가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셰익스피어의 154편 소네트가 원문과 함께 실렸고, 번역자가 직접 선택한 명화가 곁들여져 시를 읽는 감동을 배가시킨다.
엘리자베스조 시대인 튜더 중반기의 영국 사회는 급변하면서 프로테스턴트 종교로 가는 과정에 있었다. 국가 융성의 신바람 나는 런던에 돌풍처럼 천재적인 셰익스피어가 나타났다. 당시 르네상스 영국인들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위대한 극작가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호메로스’였다. 타고난 ‘지혜’의 본체였다. 그는 자신의 법칙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는 세상 모든 법칙의 예외적 존재였다. 그가 소네트를 발표하더니, 1590년 한 해 동안에 1,200편의 소네트가 인쇄되어 유포되면서 1950년대 초기와 중기에 소네트는 영국 시단의 대세가 되었다.
1598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원고의 존재를 알린 것은 목사 프랜시스 메레스(Francis Meres)였다. 그의 책 『Palladis Tamia』에서 “친구들 간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언급되었다. 이듬해 인쇄된 『열렬한 순례(Passionate Pilgrim)』(1599)는 당대 시인들의 사화집(詞華集)인데, 그 속에 셰익스피어의 시가 다섯 편 수록되었고, 두 편(소네트 138, 144)은 1609년판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에 재수록되었으며, 나머지 세 편은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1594~1695) 4막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1인칭 목소리로 시인의 정감 어린 사랑의 심정을 우정 어린 편지로 젊은이에게 전달하며 단연 돋보였다. 전편에 짙게 표현된 좌절과 승리의 인간관계는 ‘검은 여인’과 ‘경쟁 시인’이 등장하면서 소네트의 플롯은 도입과 전개와 위기(crisis)를 지나 용서와 화해로 종결된다.
1597년 이후 소네트의 열기가 식으면서 시집 출간은 뜸해지고, 셰익스피어는 희곡 창작에 열중하게 되었다.
시집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1609년 출판업자 토머스 소프(Thomas Thorpe)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인증(認證)이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헌사도 없이 출판인이 “Mr. W.H.”에게 바친다는 말만 적혀 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창작은 1592년에서 1594, 95년으로 추정된다. 런던에 전염병이 유행해서 극장 문을 닫았던 시기가 1592년과 그 이듬해였다.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와 <루크리스의 겁탈>(1594)이 발표된 시기와도 맞물리고 있다.
1593년과 1596년 사이에 썼다는 설도 있다. 소네트 107은 1603년에 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망하고, 제임스 1세가 즉위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이 시에 암시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친구들 사이에서 시집 원고가 사적으로 회람(回覽)되었다는 사실이 메레스 목사의 간행물(1598년 10월)에서 알려지고, 소네트 104는 셰익스피어가 그의 친구를 만나서 3년이 지났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내용도 창작 연도를 결정하는 데 참고가 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끊임없는 찬탄과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언제 집필되었는가? 누구에게 헌정되는가? 자서전인가 상상적인 허구인가? 셰익스피어는 동성애를 하고 있는가? ‘검은 여인’은 누구인가? 셰익스피어의 연인인가? 소네트에서 언급된 ‘경쟁 시인’은 누구인가?
―역자 이태주 해설 중에서